세계 최초의 우주정거장, 살류트(Salyut) 1호(DOS-1)

1971년, 인류의 우주 탐사 역사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였습니다. 소련이 세계 최초의 우주정거장, 살류트(Salyut) 1호를 지구 저궤도에 성공적으로 발사하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살류트(Salyut) 1호의 의미와 탄생 배경, 살류트(Salyut) 1호를 방문한 우주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소유즈 로켓

살류트(Salyut) 1호란?

1971년 4월 19일, 소련은 지구 저궤도에 인류의 첫 우주정거장인 살류트(Salyut)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이후 살류트(Salyut) 프로그램이 더욱 활발히 진행되게 만들었으며, 총 7개의 우주정거장이 5번의 시도 끝에 성공적으로 우주로 보내졌습니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단계로 발사된 즈베즈다(DOS-8)는 현재까지도 궤도를 유지하며 국제우주정거장의 러시아 섹션의 중심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살류트(Salyut) 1호는 기존의 알마즈 시리즈 우주선을 기반으로 설계되었으며, 주요 부품으로는 트랜스퍼 컴파트먼트, 메인 컴파트먼트, 두 개의 보조 컴파트먼트, 그리고 오리온1 우주 관측 기기 등 총 5개의 세부 구성품으로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이 우주정거장에는 두 번의 도킹 미션인 소유즈 10호와 소유즈 11호가 시도되었습니다. 소유즈 10호의 승무원은 하드 도킹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정거장에 진입하는 데 실패하고, 그 임무를 조기에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미션인 소유즈 11호는 성공적으로 살류트(Salyut) 1호에 도킹했고, 승무원 3명은 약 23일 동안 정거장 내에서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귀환 과정에서 발생한 밸브의 결함으로 승무원 전원이 생명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 후, 살류트(Salyut) 1호의 주요 임무는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으며, 1971년 10월 11일에는 지구 대기 중으로 재진입하여 소멸되었습니다.

살류트(Salyut) 1호의 탄생 배경

살류트(Salyut) 1호의 탄생 배경은 당시 진행 중이던 소련의 알마즈 우주정거장 계획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969년에 아폴로 11호의 성공적인 달 착륙 이후, 소련은 우주 탐사의 주요 포커스를 궤도에 위치하는 우주정거장 구축으로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N-1 로켓을 활용해 1970년대 후반에 달 착륙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연속적인 발사 실패로 인해 이 계획은 1974년에 중단되었습니다.

또한, 당시 미국이 개발 중이던 스카이랩 프로젝트에 대한 경쟁 의식도 소련의 우주정거장 계획을 추진하는 데 큰 동기가 되었습니다. 살류트(Salyut) 1호의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알마즈 우주정거장에서 착안하여 약간의 변형을 거쳤고, 이 디자인은 후에 미르 우주정거장의 기반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소련의 민간 우주정거장은 그 내부 명칭으로 DOS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DOS는 장기 궤도 정거장이라는 러시아어 표현에서 유래된 것으로, 대중 앞에서는 살류트(Salyut)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사실, 이 살류트(Salyut)라는 명칭은 초기 6개의 DOS 우주정거장 시리즈에만 적용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미르 우주정거장도 실제로는 내부적으로 DOS-7로 코드명이 부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민간 우주정거장이라는 명칭 속에서도 살류트(Salyut) 1호는 다양한 군사 실험의 장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그 중 몇몇 주요한 실험들로는 OD-4 광학 시각 레인저라는 장비를 활용한 실험, 로켓의 배기 가스와 관련된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사용된 오리온 자외선 측정기, 그리고 국가의 기밀 사항으로 간주되는 스비네츠 방사계를 활용한 실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실험들은 살류트(Salyut) 1호가 단순한 우주정거장을 넘어서, 다양한 기술적 및 군사적 목표를 추구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방문 우주선과 승무원

소유즈 10호의 우주 여정

1971년 4월 22일, 소유즈 10호는 성공적으로 발사되었고, 이 우주선에는 블라디미르 샤타로프, 알렉세이 옐리세예프, 니콜라이 루카비시니코프라는 세 명의 우주 비행사들이 탑승해 있었습니다. 이들은 살류트(Salyut) 1호와의 만남을 위해 약 24시간의 시간을 보냈으며, 1971년 4월 24일 새벽에, 성공적으로 살류트(Salyut) 1호와 소프트 도킹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세 우주 비행사는 불행히도 ISS 내부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도킹 후 약 5.5시간 동안 우주정거장 근처에서의 활동을 마친 후, 같은 날 지구로 안전하게 귀환 하였습니다.

소유즈 11호의 우주 여정

1971년 6월 6일 소유즈 11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었습니다. 이 우주선은 발사 이후 단 3시간 19분 만에 살류트(Salyut) 1호와 성공적으로 도킹을 마쳤습니다. 승무원으로는 게오르기 도브로볼스키, 빅토르 파챠예프, 그리고 블라디슬라프 볼코프가 탑승해 있었으며, 이들은 살류트(Salyut) 1호와의 연결을 통해 여러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궤도상 파일럿 스테이션의 설계, 유닛, 탑재 시스템 및 장비 점검. 스테이션의 수동 및 자율 자세 및 항법 절차, 궤도에서 복합 우주선을 조종하기 위한 제어 시스템 테스트. 지구 표면의 지질학, 지리학, 기상학, 눈과 얼음의 피복에 대한 연구. 전자기 스펙트럼의 다양한 영역에서 대기권 및 우주 공간의 물리적 특성, 프로세스 및 현상 연구. 우주정거장에서 우주비행사가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한 의학 및 생물학적 연구, 우주 비행이 인간 생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1971년 6월 29일, 소유즈 11호 승무원들은 살류트(Salyut) 1호에서의 임무 중, 362번의 궤도를 성공적으로 비행한 후, 안타깝게도 우주정거장 내에서 발생한 전기 화재 문제로 인해 임무를 일찍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 후 승무원들은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소유즈 11호로 갈아타고 카자흐스탄 지역에 낙하산으로 착륙하였습니다.

그러나 회수 작업 중 캡슐의 내부를 조사한 회수팀은 3명의 승무원 전원이 우주선 안에서 사망한 상태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추후 조사에서 승무원들의 사망 원인이 재진입 과정 중에 압력 방출 밸브의 고장으로 기내 대기가 완전히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승무원들이 가압복을 착용하지 않았던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되어 이후의 우주 임무에서 우주 비행사들에게 가압복 착용을 의무적으로 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살류트 1호의 재진입

1971년 여름, 살류트 1호는 그 궤도가 점차 낮아져 조기에 파괴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7월부터 8월 사이에 궤도를 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궤도 변경에 필요한 재설계 작업이 예상보다 길어졌기 때문에 9월에는 연료가 급감했습니다. 이에 소련 당국은 살류트(Salyut) 1호의 임무를 공식적으로 마치고, 10월 11일에는 그 궤도를 탈출시키기 위한 주 엔진을 발사시켰습니다. 결과적으로 세계에서 처음 만들어진 이 우주정거장은 175일이 지난 후에 태평양 상공에서 화염에 휩싸여 사라졌습니다.

살류트 1호에서 수행된 연구 중 75%는 광학 기기를 활용하여 진행되었으며 20%는 전파 기술을 기반으로 한 연구였고, 나머지 5%는 자기장 측정, 중력 연구 및 그 외 여러 측정 기술을 활용하여 수행되었습니다.

마무리


살류트 1호의 발사와 연구는 인류의 우주 탐사 능력을 한 단계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발생한 승무원의 비극적인 사건은 우주의 예측 불가능한 위험성과 기술적 한계를 뚜렷이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을 통해 우리는 우주 탐사의 가치와 동시에 그것의 위험성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